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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3.07.04 예비군 훈련

예비군 훈련

일상 2003. 7. 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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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문을 향해선 오줌도 누지 않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험한 군 생활 속에서 느꼈던 보람과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나누었던 진한 동료애와 자신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군인임을 증명해주었던 푸른 제복의 자부심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 생활은 애정보다는 증오와 아픔의 기억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의무복무제도라면서 빠질 놈은 다 빠져나가고, 돈 없고 빽 없는 자식들만 군대에 간다'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계급질서에 철저히 편입된 채로 각종 폭력과 인간 이하의 수모와 강요된 생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피해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리고 강자와 약자의 논리에 익숙해져 버린 자신에 대한 혐오스러움과 함께 영감이란 호칭으로 강등되어버린 예비역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비애감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악몽]

 국가에서 입영통지서가 날라왔습니다. 이미 군대를 제대한 지 5년이 넘었는데, 다시 이등병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미칠 것만 같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긋지긋한 생활이 다시 시작되고, 저의 동생보다도 한참은 어린 고참들에게 갈굼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예비역이시라면 위와 같은 악몽을 한 번쯤은 꾸어보셨을 것입니다. 예비군훈련은 이런 재입대라는 악몽을 현실에서 체험케 합니다. 색이 바랜 군복과 딱딱하고 불편한 군화 속에 자신을 담고 나선다는 것은 늙수그레한 외모 속에 감춰두었던 사회초년생이란 딱지가 만인에게 폭로되는 것과 같은 창피스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휴가 나온 군인과 절대 혼동하지 않도록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군화를 풀어헤치고 옷도 되는대로 입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말투마저 억세어져 버리는 것은 실제의 나와는 다른, 어색한 반항의 모습일 뿐입니다.

 "선배님! 전투모 착용해주시고, 상의는 하의 안에 넣어주십시오."

 "알았다."

 군대 갔다 와서 부쩍 겁이 늘어버린 저는 곧이곧대로 따르고 말지만, 위병소 앞에서 간부들과 맞짱 뜨는 대담한 동지(?)들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억눌렸던 군 생활에 대한 작은 한풀이가 아닐런지요...

 FM(규정대로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군대용어입니다.)대로 하면 이런 모습의 예비군은 마땅히 처벌대상이라곤 하지만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3, 4일 정도만 머무를 뿐인, 민간인들에게 군인의 규율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기에 통제하는 자와 통제받는 자 사이에는 암묵적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정예 XX 동대 여러분과 만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자~ 1분 안에 담배 한대 피울 기회를 주겠습니다."

 간부들의 친절한 존대와 속 보이는 달램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따라주면서 허용된 개갬을 누리는 줄다리기를 즐기며 무료하기 짝이 없는 하루는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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