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네트워크 마케팅 | 1 ARTICLE FOUND

  1. 2003.07.04 다단계회사를 다니던 친구들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학에 처음 들어와 모든 것이 낯설던 신입생 시절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었는지, 함께 뜻이 맞아 모이게 된 친구들은 서로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다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고,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었고, 서로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A라는 친구는 리더쉽도 있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정도 많아서, 우리는 모두 그를 중심으로 모이곤 했습니다. A는 집안 사정이 잘 풀리지 않아서, 항상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던 고학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A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현아. 지금 내가 장사하고 있는데, 일손이 많이 부족하거든.. 네가 도와주면 정말 좋겠다."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몸이 귀찮아서, 적당한 핑계를 대며 거절을 하였습니다. 하루 후, 함께 일하고 있다는 B가 다시 부탁의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친구가 사정이 어렵다고 도움을 요청하는데, 2번이나 거절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승낙하게 되었고, 다음날 약속장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만나자마자,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저에게 그 친구들은 "가보면 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번화가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뒷길에 세워진 빌딩으로 저를 안내해주었습니다. 계단을 올라 도착한 넓은 공간에는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약간의 진열장이 놓여 있었고, 한쪽에는 책상이 빼곡하게 놓인, 몇 개의 강의실들이 보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일까?'

 저는 한 강의실로 안내받고, 그곳에서 만난 다른 친구 C가 뽑아준 커피를 마시며, 대기하였습니다. 잠시 후,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아가씨가 활기찬 인사를 한 후, 강의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강의의 내용은 주로 팔고 있는 화장품과 건강식품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제품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사업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네트워크 마케팅은 21세기에 가장 유망한 사업아이템입니다."

 "피라미드와 네트워크 마케팅은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 회사는 생방송 '모닝와이드'에도 보도된 믿을 수 있는 회사입니다."

 저는 이내 알 수 있었습니다. 언론에서 많이 듣던 피라미드 회사였다는 것을... 1시간정도의 강의가 끝난 후, 친구들은 "많이 놀랐지? 하지만, 우리가 너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있어.", "가장 친한 너에게 성공을 보여주고 싶어. 3일만 참고 나오면 우릴 이해하게 될거야."라며 안심시키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는 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거짓말까지 하며 이런 곳에 날 데려왔다는 것과 내가 그렇게 어수룩한 사람으로 친구들에게 보였다는 생각에 화가 났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왜 거짓말까지 하며 날 이곳에 끌어들였느냐?"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오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어. 그 점은 정말 미안하다."

 그곳이 5층 정도 되는 곳이었는데, 문득 일본의 피라미드 업체에서 저처럼 초청받은 한 사람이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저의 생각은 온통 탈출해야겠다는 매우 급한 생각으로 뒤죽박죽되었고, 심장은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왔는지... 어떻게든 달아나야겠다.'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함께 따라나선 친구들이 다른 곳에 주의를 돌린 순간, 저는 열린 계단으로 냅다 뛰었습니다. 정신없이 3층 정도 뛰어 내려왔을까? 따라 달려온 친구들에게 저는 잡혀버리고 말았습니다. 함께 내려온 A는 저의 행동에 무척 놀란 듯하였습니다.

 "지현아. 왜 그러냐?", "친구를 그렇게 못 믿느냐?"

 1시간이 넘는 침묵과 설득이 이어졌고, 그렇게 튼튼하고, 강인해 보이던 A가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도 마음 한쪽이 울컥하고 눈물이 나려는 것을 어렵사리 참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배신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 야속스러웠습니다. 할 수 없이, 나머지 하루의 강의를 듣기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오후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주로 물건을 판매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 최소한 한 달에 4~50만 원의 벌이는 된다. 빨리 뛰어들수록 유리하다. 현재 월 1000만 원이 넘는 수입을 가져가는 20대 이사님도 있다. 우리는 돈을 벌어서 보육원을 세우고 복지사업을 하는 등의 건강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다. 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초청받은 사람들이 인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부분 친구나 애인, 교회사람, 친척, 동생 등의 관계로 오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녁 6시가 훨씬 지나서야 모든 하루 일정이 끝이 났습니다. A가 잘 곳이 마땅치 않다며, 잘 곳을 부탁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1박을 함께 한 다음 날 이른 아침, A와 저는 2일째 강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아침결의"란 순서가 있었는데, 모든 판매원이 1분 이내에 자신의 각오를 외치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사이비종교집단의 발광하는 모습과 흡사하달까... 그 날은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의 가입비로 200여만 원이 넘는 돈을 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골출신의 C는 등록비까지 끌어들여 충당했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 되지 왜 말도 많은 이런 일을 택했느냐?"

 "지현이 네가 공부하는 이유가 뭐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냐?"

 "우린 드문 기회를 만난 거야. 절대 후회하지 않을 좋은 아이템이야.."

 "몇 달만 바짝 고생하면, 학교에 다니는 게 문제가 아니야. 멋진 차와 집을 가질 수도 있고, 벌어들인 돈으로 남들에게 좋은 일도 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거야."

 "지현아. 우리 함께 성공하자."

 평소와는 눈빛마저 달라져 버린 친구들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제시하는 모든 분홍빛 미래는 그 친구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하고, 목표에 매달리게 할 만하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와는 왠지 맞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설득하여 그곳에서 함께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이지만, 저는 그 친구들까지 설득할 확신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위험해 보이는 그 일에서 그렇게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날의 일정이 모두 끝난 후, 저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더는 끌려 다녀선 안 되겠다."

 굳이 저의 집에서 함께 자겠다는 C를 떼어놓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저는 그곳에 가지 않았고, 집을 나와 며칠간 다른 곳에서 지냈습니다. 수 일이 지난 후, 가족으로부터, 친구들이 집 앞에서 며칠째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길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루가 지났을 때쯤... 저는 교회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왔습니다.

 친구들의 끈질김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놀라움과 함께 낙심한 저를 맞는 그 친구들은 뜻밖에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못 만날 거로 생각했니?", "그간의 잘못은 용서해줄 테니, 지금 가자."라고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거부하는 저에게 점차 화를 내며, 어떻게든 데려가려던 그 친구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묵" 뿐이었습니다. 2시간도 훨씬 넘는 지루한 대치가 지난 후에야, 그 친구들은 저에게 고함을 치며 떠났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증스러운 다단계 새끼들로 보이나?"

 "지현아. 네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정말 실망했다. 다시는 친구로 생각하지 않겠다. 다시는!"

 "두고 봐! 꼭 우리는 성공하고 말 테니!"

 떠나던 그 친구 중에 C는 다시 돌아와 저를 설득하려 했지만 "미안하다."라는 대답밖에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고, 그 친구들이 빠진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갈 즈음, 학교를 떠나있던 그 친구들이 다단계회사에서 탈퇴하였고, 거금의 가입금도 어렵사리 돌려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친구들과 술자리를 함께하게 되었고, 어색한 안부인사를 나누며 서로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친구들이 다단계회사에 몸담고 있었던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 친구들의 꼬였던 운명과 어려웠던 생활을 생각해보며,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비록 한순간 눈이 어두워 있었을지라도, 저와 함께 성공을 나누고자 했던 우정어린 마음은 고마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록 함께 하지는 못할지라도, 따뜻한 친구로서 걱정해주고 설득하였어야 옳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해봅니다.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같던 재회  (0) 2020.02.11
짝사랑의 추억  (0) 2020.02.11
오토바이의 치명적인 매력  (0) 2013.02.10
코란도 지프  (2) 2012.01.21
아사꼬를 추억하다.  (0) 2007.04.13
울어버린 이등병  (0) 2003.07.04
6학년의 기억  (0) 2003.07.04
얼치기 강사  (0) 2003.07.04
비겁한 도피  (0) 2003.07.03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