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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쯤 도착한 그곳은 양쪽으로 분홍빛 불빛만 휑하니 켜진 채 걸어 들어가기가 겁날 정도로 텅 비어 있었습니다. 16번 가게는 입구에 있어 후딱 뛰면 무난히 들어갈 수 있겠지만 왠지 그렇게 쉽게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방으로 50여 미터 정도 난 거리를 혼자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양쪽에 서 있던 아줌마들이 악다구니처럼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총각! 그러지 말고 내하고 이야기 좀 하자! 응?" "우리 아가씨들 좀 봐라! 한번 보기나 해봐라!"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가는 잡혀들어갈 것 같아서 후딱 16번 가게로 돌아왔습니다.
분홍불빛이 환한 쇼윈도 속에 수빈 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방에서 만났던 표정들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침울해 보였습니다. 수빈 씨와 함께 TV가 나오지 않던 그 방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일주일 여 만에 다시 만난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오빠 들어올 거면 얼른 들어오지 뭣 하러 거기까지 갔어?"
"오빠가 날 선택할지 안 할지 몰라서 아는 척 못했어."
그녀와 나란히 누웠습니다. 제가 하지 않았던 낯선 말들을 다시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드문드문 이어졌지만,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문득 그녀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오빠 30분은 금방이야. 좀 있으면 문 두드릴 거야."
주인 잃은 시간이 지나고 가슴이 비어버리는 듯한 공허감이 밀려왔습니다. 한참을 끌어안고만 있었습니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쓴 담배냄새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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