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페이스북 검색을 통해 찾아봅니다. 하지만 대부분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이라 그런지 페이스북 조회에서 근황을 찾을 수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검색에서 간혹 간단한 프로필을 올려두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매력 있던 옛 모습은 희미해져 버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더라도 좀처럼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변해버린 것에 놀라게 됩니다. 새삼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됩니다.

앞으로 그들과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만... 다시 만나봐야 이젠 아무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다시 만나봐야 무슨 감정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요? 이젠 당시의 외모가 아니고 이젠 당시의 감정이 아니고 이젠 당시의 기억마저 희미해져 버렸는데...

이제 그들은 추억 속의 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억 속의 그 사람은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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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같던 재회

추억 2020. 2. 11. 19:24

몇 주간 머릿속에 계속 빙빙 돌고 있는 추억을 써볼까 합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그 추억을 풀어내야만 저의 머리에서 그 기억이 떠날 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 방학기간을 이용해 동네의 한 학원에서 수학 과외수업을 받았었습니다. 그 학원은 한 반의 학생 수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습니다.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던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었습니다. 보이쉬한 헤어스타일에 선명한 쌍꺼풀이 인상적인 얼굴과 활발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었습니다. 그 애에게 줄 편지를 며칠 동안 여러 번 고쳐 쓰며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었는데 결국 용기의 부족으로 편지를 그 애에게 전하지 못하고 개학과 동시에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대학에 입학하였고 그후 동아리에 가입하여 동아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오후에 선배와 동기들이 모여 식재료와 준비물을 챙기고 늦은 저녁에 학교에 모여 시내 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버스에 타고 보니 퇴근 시간이 끝난 덕분에 객실이 한산했습니다. 버스는 여러 정류장을 거쳐 저의 집 인근의 한 정류장에 멈추었습니다.

한 여자가 버스에 올라 하차문 뒤편에 있던 저의 자리까지 다가와 섰습니다. 제 자리까지 다가와 저를 조금 놀라게 했던 그 여자를 쳐다봤습니다. 아! 그 여자는 중학교 때 학원에서 만났던 바로 그 애였습니다. 불과 4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을 뿐이어서 그 애의 보이쉬한 헤어스타일과 예쁜 얼굴은 그대로였습니다.

저를 아직 인식하지 못한 듯한 그 애에게 인사를 해볼까 생각하던 차에 키가 전봇대처럼 크고 스포츠머리를 하고 가벼운 트레이닝 복장을 한 백인이 버스에 이어서 올라타는 것이 보였습니다. 외박 나온 미군 병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백인은 버스 운전사의 뒷자리에 앉은 후 저의 자리에 서 있는 그 애를 불렀습니다. 그 애는 마지못해 그의 곁에 다가가 서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백인은 앉은 자세로, 그 애는 그의 곁에 서있는 자세로 낯 뜨거운 애정행각이 시작되었습니다. 커헐... 충격스런 재회의 추억이 아직도 남아 가끔씩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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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의 추억

추억 2020. 2. 11. 19:00

국민학교 4학년 때 짝사랑했던 같은 반 여자애가 있었습니다. 일본 인형 같은... 쇼트커트, 까만 머리카락, 하얀 피부, 쌍꺼풀 없이 찢어진 눈매, 까만 눈동자, 보조개, 야리야리한 몸매… 그 애는 여성적이면서 좀 보이시한 스타일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좋아하는 마음에 걔네의 집 앞까지 몰래 따라갔다가 그 애에게 들켜서 여러 번 꼬집혔던 기억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동아리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연히 그 애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뚱뚱해진 체형과 달라진 얼굴형… 이름은 그대로였지만 어린 날의 모습이 희미해져버린 그를 보면서 반가움과 실망감이 교차했던 재회의 기억이 생각납니다.

어제 문득 그 애가 떠올라 페이스북을 뒤져보다가 근황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예전처럼 야리야리한 모습으로 돌아간 그의 모습… 하지만 확연하게 느껴지는 중년 아줌마의 느낌...

페이스북을 통한 세 번째 만남… 그의 변해가는 모습들이 참 드라마틱하게 느껴졌고 인생이 참 짧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대로인데 다들 세월에 떠밀려 저만치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곧 50살, 60살이 닥쳐올 테죠… 제 기억 속의 그들은 한 명씩 한 명씩 세상에서 사라져갈 테고… 결국 그 기억들은 저 혼자만 가지게 될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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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구미의 동락 공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제가 오토바이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출, 퇴근용으로 중고 스쿠터를 구매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하지만 고질적인 시동 불량 문제 때문에 얼마 타지도 못하고 팔아버린 후 효성 미라쥬 125를 중고로 구매했었습니다. 125cc답지 않은 육중한 차체와 실린더가 2개인 것이 마음에 들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1종 보통면허만 있으면 배기량 125cc까지의 오토바이를 탈 수 있었기에 왼발로 기어를 바꾸는 법, 왼쪽 레버로 클러치를 쓰는 법 등의 조작법을 스스로 익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보운전 때, 건널목 앞에서 주행신호가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오른쪽 레버와 오른쪽 발 브레이크를 써야 하는 것을 잊고 자전거처럼 양쪽 레버를 동시에 잡는 바람에 차체가 심하게 떨려서 거의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타는 법에 익숙하여지면서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해 대구 시내를 휘젓고 다녔었습니다. 정말 오토바이는 보는 것과 달리 교통수단 이상의 놀라운 매력이 있었습니다. 육중한 차체에 올라타서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면,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내가 살아있는, 그 생생한 느낌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오토바이를 탄 지 3개월 정도 되던 날, 타는 것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서 대구에서 부산까지 내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마친 일요일 오후, 바람이나 잠깐 쐐보자고 오토바이를 탔다가 달서구에서 동대구역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예상보다 시간이 남아서 경산까지만 가고 돌아가려 했지만 청도와 밀양까지 가게 되었고 돌아가기엔 너무 와버렸다는 생각에 그냥 막 달려서 김해를 지나 구포다리를 건너 만덕터널을 지나 해운대까지 타고 왔었습니다. 물론 집에서는 난리가 났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할 놈이 아무런 전화도 없이 오토바이만 달랑 타고 그 먼 길을 내려왔으니 말이죠. 그 여행은 3시간 정도 걸렸었는데 저를 끝없는 무아지경으로 이끌었던 그 행복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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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도 지프

추억 2012. 1. 21. 00:31

 코란도 지프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품어 온 꿈의 차였습니다. 계기는 어느 저녁, 하굣길에 학교 인근 주유소에 세워져 있던 코란도 지프 오픈카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어떤 험한 길이라도 헤치고 나갈 것 같은 남성적이고 투박한 모습, 검은 천으로 덮여 있던, 어두컴컴하면서도 아늑한 실내... 저는 그때부터 지나가는 코란도 지프마다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완전히 매료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간절했던 바람에도 그로부터 거의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저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장한평 중고자동차 시장에서 운 좋게 구매했던 차량은 10년이 넘은 연식에도 보존상태가 매우 좋았습니다. 노후로 말미암은 불량 탓에 수리비가 좀 들긴 했지만, 아날로그 기계식 차량이 주는 운전의 즐거움, 희귀하면서도 클래식한 매력을 가진 차량의 소유주라는 자부심,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와 소심한 성격 때문에 늘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강한 남성성과 힘을 동경해왔던 저에게 채워준 만족감은 결국 5년 동안의 보유로 이어지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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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isdory.tistory.com BlogIcon 철한자구/서해대교 2012.02.18 0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아직도 관리 잘 되어있는 코란도를 볼때면 어딘가 나도 저차 갖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지요 ㅎㅎ 얼마전까지만해도 저희아파트에 최초창기형 관리 잘된차 한대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가있으려나요.....

    • Favicon of https://www.jihyun.biz BlogIcon kwonjihyun 2012.02.18 0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서오세요^^ 철한자구/서해대교님. 디자인만으로도 남자의 마음을 흔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자동차였습니다.주말에 세차장에 가면 슬며시 다가오셔서 이것 저것 물어보는 분들, 웃돈을 주고 사고 싶다는 분들이 종종 있었죠. 지나고 보니, 오랜 세월 생산된, 몇 안되는 명차임이 틀림없는 듯 합니다.^^



아사꼬를 추억하다.

추억 2007. 4. 13. 12:2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라진 시간들과 지나간 모습들과 닿았던 마음들... 하지만 이미 무수한 찰나 속으로 영원히 떠나갔슴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가슴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있겠죠."
 "그런 것도 행복이라 생각해요. 하나의 행복했던 추억이 될테니까."

 그때 당신이 제게 전해주려 했던 의미들... 이제야 저의 독백처럼 느껴옵니다.

 * 관련 기사 : KBS, 피천득 선생 수필 주인공 '아사꼬' 사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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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버린 이등병

추억 2003. 7. 4. 18:05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군대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로 배치되면 신고식이란 것을 합니다. 아마도, 낯선 환경과 사람에 쉽게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는 비공식적인 관행일 테지만, 신고식에서 해야 할 내용은 신병인 당사자로선 참으로 모멸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들로 채워집니다.

 신고식의 내용은 '첫 경험에 대한 이야기', '아는 여자들 연락처 팔기', '웃긴 이야기하기', '노래 부르기', ' 춤추기'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신병에 대한 앞으로의 대접은 신고식에서 얼마나 고참들을 재밌게 해주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무반 분위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군 생활의 특성상, 신병의 신고식은 신병 본인뿐만 아니라, 신병을 지도하는 일병들에게까지 지워진 공동책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없는 말까지 만들어서라도 신고식을 풍성하게 해야 하는 신병의 고충은 아마 군대를 갔다 오신 분이시라면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 교회를 다닌다던, 범생이처럼 생긴 신병 하나가 전입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전입해 온 다음날, 내무반에서 신고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의 신고식 시절이 부끄러울 정도로 박수갈채를 받으며 잘 해내었습니다. 고참들 모두가 새로운 신병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며 기대를 하는 눈치였습니다.

 신고식과 점호가 모두 끝나고 모두 곤히 잠든 시간, 들릴 듯 말듯 흐느끼는 소리에 저는 그만 잠을 깨고 말았습니다. 옆자리에 모포를 덮어쓰고 누운 그가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어디 아프냐?"

 "아닙니다."

 "괜찮아 말해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그가 어렵사리 대답하였습니다.

 "좀 전에 신고식에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흐느낌을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작은 거짓에 슬퍼할 수 있는 그의 순수한 마음에 저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다행스럽게도 그는 부대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축구경기에서 엄지발톱이 깨져 피가 흐르는 중에도 축구를 계속한 탓에 오히려 고참들이 그를 만류하기도 했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싫은 내색 없이 열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열심 때문에 새로 전입해 오는 신병들은 그에 비견되며 고참들의 갈굼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렇게 매사에 몸을 사리지 않는 성실함과 착함 심성을 가졌던 그는 차차 주위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대 내에서 공동 작업이 있었던 어느 날, 너무 무리한 탓인지 그만 그의 한쪽 어깨가 탈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내색 없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일을 멈추지 않았던 그...

 그는 결국 일병계급장을 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쯤, 습관성 탈골로 입원하게 되었고, 그제야 부대원들은 그가 얻은 병에 대해 알게 있었습니다. 그가 입원한 후에 부대원들은 그의 미련함을 탓하면서도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말 종교행사 때면 여전히 환한 그를 찾아가 위로와 기도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만 그는 모두의 바람에도 병세가 악화한 채,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을 가게 되었고, 끝내 의가사제대라는 불명예를 안고 군을 떠나가고 말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제대한 지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군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을 종종 되새겨볼 때면 소년처럼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모두를 감동하게 했던 그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 군 생활은 평생을 안고 갈 상처로 남아 있진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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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님의 소중한 의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6학년의 기억

추억 2003. 7. 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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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 집에서 조그만 슈퍼를 시작하게 되어 그동안 다니던 A 초등학교에서 Y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전학을 가게 된 학교는 시설이 잘 갖춰진, 소위 '특 A 학교'라고 불리던 곳이었는데 다니던 학교와 비교해볼 때 확실히 그런 평판을 들을 만 했습니다.

 요즘에는 일반화되어 전혀 신기할 것이 없지만, 스피커 방송이 대부분이던 그 시절. 그 학교는 벌써 TV 방송시스템을 갖추고 전 교실에 하나씩 설치된 TV를 통해 학생자치방송과 영어교육을 실시할 만큼 재정이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도심교차로와 지하철이 가까워 교통이 편리했고, 인근에는 엘리베이터 설비가 되어 있는 고층아파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집에 차 한 대 굴리기도 쉽지 않던 시절에 이미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어머님들까지 있었습니다.

 배정받은 학급에서 반 년간의 5학년 생활을 마치고 6학년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학기초에 반장, 부반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는데 그 학교는 6개월 임기의 학급임원제를 두었고 한 학기에 6명을 뽑았습니다.

 이전에 다니던 A 초등학교에선 성적이 그다지 나쁘지만 않다면 누구나 반장선거를 통해 리더쉽을 배울 기회가 주어졌었고 하는 일도 거의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었기에 선뜻 나서게 되었습니다. 임원선거 결과가 나오자 몇몇 친구가 저를 밀어준 덕분인지 무난히 6명의 학급임원 중에 제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담임은 당혹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담임은 애써 당혹감을 감추며, 전교회장선거에 출마할 사람이 없느냐고 당선된 임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아...간이 부었다고 해야할지...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저는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제 말에 학급 전체가 시끄러워졌고, 담임선생은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정말이냐? 네가 전교회장을 할거냐?" 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담임은 저를 복도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지현아. 잘 생각해봐라. 전교회장은 학급임원과는 다르다. 잘 생각해봐라."

 선생은 연거푸 설득 아닌 설득을 하였고, 어린 학생일 수밖에 없었던 저는 그만 담임의 뜻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학교는 어머님들의 치맛바람이 대단했었는데 학급 임원과 학생회 간부 자리, 기타 리더쉽을 발휘할 모든 기회는 학교에 재력을 행사하던 힘있는 집안의 자제들에게 우선으로 배정되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담임은 Y군을 학급임원이자 전교회장으로 밀어줄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듯했습니다. 그런데 Y군이 학급임원선거에서조차 떨어지고 전교회장에도 못 나가게 된 상황에 예상에도 없던 제가 돌출했으니 학부모와 이미 주거니 받거니 한 담임으로서는 참으로 난처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후에 담임은 재량권을 이용해 Y에게 체육부장 자리를 주었고 운동회 때면, 고싸움놀이의 장수역할을 주기도 하였으며 서예동아리의 수제자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제가 학급임원에 뽑힌 소식을 들으신 부모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도 걱정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학급임원의 어머니는 학부모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암암리에 갖가지 명목의 적지 않은 돈과 선물들을 뿌려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그만 슈퍼를 운영하던 집안 사정으로는 턱없는 일이었기에 어머님께서는 조그만 선물을 챙기시고는 담임을 찾아가셔서 당신이 파출부를 하시며 어렵게 산다는, 지어낸 이야기로 미리 선수를 치셔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6개월 임기의 학급임원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1년간 정말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의 동생이 학급임원선거에서 떨어졌던 동료 Y군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저는 Y군을 P군으로 착각한 동생의 이야기에 격분한 나머지 P군과 다툼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애매한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 빌미가 되어, 저를 벼르던 학급동료에게 이른바 '왕따'의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와 집안 형편과 생각이 비슷했던 K, B, J 등의 친구들이 함께 해주긴 했지만 그들의 집요한 폭력과 괴롭힘은 1년간이나 지속하였습니다. 한편으론 저를 그렇게 괴롭히던 그 친구들은 나이에 비해 참으로 영리하고, 대담하기도 했습니다.

 수업 중에 앞으로 어떤 여자와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에 P군은 대뜸 "돈 많고 오래 못사는 여자하고 결혼할 거예요."라고 대답하여 선생이 할 말을 잃게 하기도 하였고 K라는 친구는 자신과 학급의 일을 이용해 학부모와 결탁(?)한 담임의 비리를 수업 중에 제기해, 집단항명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쩔쩔매며 자신의 금 딱지 '갤럭시' 시계를 변명하던 비굴한 담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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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강사

추억 2003. 7. 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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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벤처 열풍이 불었던 몇 년 전, 갈 곳을 찾지 못한 많은 사람은 IT 전문직이라는 새로운 직종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전공자이건, 비전공자이건, 독학자이건, 학원출신이건... 모두에게 기회가 활짝 열려 있는 것 같았고, 술렁이던 시기였습니다.

 저 역시도, 수많은 웹 지망생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취미로 홈페이지를 만들던 실력을 살려 웹디자이너가 되고자 진로를 잡고, 웹디자인 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운 좋게도 열성적이고, 실력이 뛰어난 선생들을 만나게 되어,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수료가 다가오면서 저를 가르쳐 주시던 그래픽선생이 학원 쪽과의 불화로 떠나게 되면서, 저는 생각에도 없던 강사 일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고작, 3개월간의 강의만을 수료한 채 웹디자인강사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 분명해 보였지만 학원경영의 어려움과 개인적 경력의 필요성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삭막한 미적 감성을 가졌던 저로선, 디자인에 대한 핵심은 빠진 채 도구의 사용법만을 가르치는 껍데기 강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박회사에 다닌다던 30대의 아저씨, 인터넷업체의 신입사원, 40대 후반의 대학원생, 친한 친구사이라던 4명의 여대생들... 강사와 학생이라는 관계로 만났던 그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저를 진땀빼게 하던 몇몇 열성 학생도 있었지만, 초보자이면서도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별로 없었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저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강사생활을 하며 모았던 월급으로 새 PC도 사고, 이런저런 용도로 잘 썼지만... 돌이켜보면 변변찮은 얼치기 강사로서 그들을 속이고 빚만 얻어온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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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 처음 들어와 모든 것이 낯설던 신입생 시절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었는지, 함께 뜻이 맞아 모이게 된 친구들은 서로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다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고,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었고, 서로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A라는 친구는 리더쉽도 있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정도 많아서, 우리는 모두 그를 중심으로 모이곤 했습니다. A는 집안 사정이 잘 풀리지 않아서, 항상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던 고학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A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현아. 지금 내가 장사하고 있는데, 일손이 많이 부족하거든.. 네가 도와주면 정말 좋겠다."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몸이 귀찮아서, 적당한 핑계를 대며 거절을 하였습니다. 하루 후, 함께 일하고 있다는 B가 다시 부탁의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친구가 사정이 어렵다고 도움을 요청하는데, 2번이나 거절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승낙하게 되었고, 다음날 약속장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만나자마자,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저에게 그 친구들은 "가보면 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번화가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뒷길에 세워진 빌딩으로 저를 안내해주었습니다. 계단을 올라 도착한 넓은 공간에는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약간의 진열장이 놓여 있었고, 한쪽에는 책상이 빼곡하게 놓인, 몇 개의 강의실들이 보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일까?'

 저는 한 강의실로 안내받고, 그곳에서 만난 다른 친구 C가 뽑아준 커피를 마시며, 대기하였습니다. 잠시 후,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아가씨가 활기찬 인사를 한 후, 강의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강의의 내용은 주로 팔고 있는 화장품과 건강식품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제품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사업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네트워크 마케팅은 21세기에 가장 유망한 사업아이템입니다."

 "피라미드와 네트워크 마케팅은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 회사는 생방송 '모닝와이드'에도 보도된 믿을 수 있는 회사입니다."

 저는 이내 알 수 있었습니다. 언론에서 많이 듣던 피라미드 회사였다는 것을... 1시간정도의 강의가 끝난 후, 친구들은 "많이 놀랐지? 하지만, 우리가 너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있어.", "가장 친한 너에게 성공을 보여주고 싶어. 3일만 참고 나오면 우릴 이해하게 될거야."라며 안심시키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는 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거짓말까지 하며 이런 곳에 날 데려왔다는 것과 내가 그렇게 어수룩한 사람으로 친구들에게 보였다는 생각에 화가 났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왜 거짓말까지 하며 날 이곳에 끌어들였느냐?"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오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어. 그 점은 정말 미안하다."

 그곳이 5층 정도 되는 곳이었는데, 문득 일본의 피라미드 업체에서 저처럼 초청받은 한 사람이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저의 생각은 온통 탈출해야겠다는 매우 급한 생각으로 뒤죽박죽되었고, 심장은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왔는지... 어떻게든 달아나야겠다.'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함께 따라나선 친구들이 다른 곳에 주의를 돌린 순간, 저는 열린 계단으로 냅다 뛰었습니다. 정신없이 3층 정도 뛰어 내려왔을까? 따라 달려온 친구들에게 저는 잡혀버리고 말았습니다. 함께 내려온 A는 저의 행동에 무척 놀란 듯하였습니다.

 "지현아. 왜 그러냐?", "친구를 그렇게 못 믿느냐?"

 1시간이 넘는 침묵과 설득이 이어졌고, 그렇게 튼튼하고, 강인해 보이던 A가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도 마음 한쪽이 울컥하고 눈물이 나려는 것을 어렵사리 참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배신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 야속스러웠습니다. 할 수 없이, 나머지 하루의 강의를 듣기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오후의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주로 물건을 판매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 최소한 한 달에 4~50만 원의 벌이는 된다. 빨리 뛰어들수록 유리하다. 현재 월 1000만 원이 넘는 수입을 가져가는 20대 이사님도 있다. 우리는 돈을 벌어서 보육원을 세우고 복지사업을 하는 등의 건강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다. 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초청받은 사람들이 인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부분 친구나 애인, 교회사람, 친척, 동생 등의 관계로 오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녁 6시가 훨씬 지나서야 모든 하루 일정이 끝이 났습니다. A가 잘 곳이 마땅치 않다며, 잘 곳을 부탁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1박을 함께 한 다음 날 이른 아침, A와 저는 2일째 강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아침결의"란 순서가 있었는데, 모든 판매원이 1분 이내에 자신의 각오를 외치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사이비종교집단의 발광하는 모습과 흡사하달까... 그 날은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의 가입비로 200여만 원이 넘는 돈을 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골출신의 C는 등록비까지 끌어들여 충당했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 되지 왜 말도 많은 이런 일을 택했느냐?"

 "지현이 네가 공부하는 이유가 뭐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냐?"

 "우린 드문 기회를 만난 거야. 절대 후회하지 않을 좋은 아이템이야.."

 "몇 달만 바짝 고생하면, 학교에 다니는 게 문제가 아니야. 멋진 차와 집을 가질 수도 있고, 벌어들인 돈으로 남들에게 좋은 일도 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거야."

 "지현아. 우리 함께 성공하자."

 평소와는 눈빛마저 달라져 버린 친구들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제시하는 모든 분홍빛 미래는 그 친구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하고, 목표에 매달리게 할 만하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와는 왠지 맞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설득하여 그곳에서 함께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이지만, 저는 그 친구들까지 설득할 확신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위험해 보이는 그 일에서 그렇게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날의 일정이 모두 끝난 후, 저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더는 끌려 다녀선 안 되겠다."

 굳이 저의 집에서 함께 자겠다는 C를 떼어놓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저는 그곳에 가지 않았고, 집을 나와 며칠간 다른 곳에서 지냈습니다. 수 일이 지난 후, 가족으로부터, 친구들이 집 앞에서 며칠째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길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루가 지났을 때쯤... 저는 교회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왔습니다.

 친구들의 끈질김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놀라움과 함께 낙심한 저를 맞는 그 친구들은 뜻밖에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못 만날 거로 생각했니?", "그간의 잘못은 용서해줄 테니, 지금 가자."라고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거부하는 저에게 점차 화를 내며, 어떻게든 데려가려던 그 친구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묵" 뿐이었습니다. 2시간도 훨씬 넘는 지루한 대치가 지난 후에야, 그 친구들은 저에게 고함을 치며 떠났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증스러운 다단계 새끼들로 보이나?"

 "지현아. 네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정말 실망했다. 다시는 친구로 생각하지 않겠다. 다시는!"

 "두고 봐! 꼭 우리는 성공하고 말 테니!"

 떠나던 그 친구 중에 C는 다시 돌아와 저를 설득하려 했지만 "미안하다."라는 대답밖에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고, 그 친구들이 빠진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갈 즈음, 학교를 떠나있던 그 친구들이 다단계회사에서 탈퇴하였고, 거금의 가입금도 어렵사리 돌려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친구들과 술자리를 함께하게 되었고, 어색한 안부인사를 나누며 서로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친구들이 다단계회사에 몸담고 있었던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 친구들의 꼬였던 운명과 어려웠던 생활을 생각해보며,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비록 한순간 눈이 어두워 있었을지라도, 저와 함께 성공을 나누고자 했던 우정어린 마음은 고마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록 함께 하지는 못할지라도, 따뜻한 친구로서 걱정해주고 설득하였어야 옳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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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도피

추억 2003. 7. 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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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6세대... 60년대 출생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 나이의 사람들을 `386세대'라고 지칭합니다. 그들은 공동체가 제공해준 교육이라는 부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잊지 않고 실천에 옮긴 정의로운 세대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불행한 시대에 맞서 공동의 가치를 위해 자신을 유보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내야 했던 불운한 세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좌익과 용공이라는 불명예스런 딱지를 떼어내고 시대를 이끈 정신이자 살아 있는 양심으로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386세대의 정신을 계승한 막차세대라고 할 수 있는 297세대... 그런 297세대에 속했던 저 역시도 '데모학교'라고 불리던 모교에 입학한 후 사회적 현실에 어느 정도 눈을 뜰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타의에 의해 들어가긴 했지만, 반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소위, 운동권 동아리라는 곳에 머물면서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던 새로운 사실들을 배우게 되었고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아리에서 작은 직책도 맡게 되었고, 민족과 역사에 대해 토론도 하며 때때로 시위현장에 참석하기도 하였고, 높은 직책을 맡고 있던 사람들을 소개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옮기기를 주저하는 모습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당시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학생운동이 약화하기 시작했고 내외적인 비판에 직면해 있었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개인적인 이기심과 시위현장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위현장에서 대치 중에 안경이 깨지는 경험을 한 후, 운동권 동아리 대신 기독동아리로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것으로 피 터지는 생활을 대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학생운동의 명분과 방법론에 대한 모든 것이 옳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정의에의 신념과 실천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음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에의 기회를 비겁한 도피로 대신했던 과거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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