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버린 이등병

추억 2003. 7. 4. 18:05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군대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로 배치되면 신고식이란 것을 합니다. 아마도, 낯선 환경과 사람에 쉽게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는 비공식적인 관행일 테지만, 신고식에서 해야 할 내용은 신병인 당사자로선 참으로 모멸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들로 채워집니다.

 신고식의 내용은 '첫 경험에 대한 이야기', '아는 여자들 연락처 팔기', '웃긴 이야기하기', '노래 부르기', ' 춤추기'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신병에 대한 앞으로의 대접은 신고식에서 얼마나 고참들을 재밌게 해주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무반 분위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군 생활의 특성상, 신병의 신고식은 신병 본인뿐만 아니라, 신병을 지도하는 일병들에게까지 지워진 공동책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없는 말까지 만들어서라도 신고식을 풍성하게 해야 하는 신병의 고충은 아마 군대를 갔다 오신 분이시라면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 교회를 다닌다던, 범생이처럼 생긴 신병 하나가 전입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전입해 온 다음날, 내무반에서 신고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의 신고식 시절이 부끄러울 정도로 박수갈채를 받으며 잘 해내었습니다. 고참들 모두가 새로운 신병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며 기대를 하는 눈치였습니다.

 신고식과 점호가 모두 끝나고 모두 곤히 잠든 시간, 들릴 듯 말듯 흐느끼는 소리에 저는 그만 잠을 깨고 말았습니다. 옆자리에 모포를 덮어쓰고 누운 그가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어디 아프냐?"

 "아닙니다."

 "괜찮아 말해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그가 어렵사리 대답하였습니다.

 "좀 전에 신고식에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흐느낌을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작은 거짓에 슬퍼할 수 있는 그의 순수한 마음에 저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다행스럽게도 그는 부대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축구경기에서 엄지발톱이 깨져 피가 흐르는 중에도 축구를 계속한 탓에 오히려 고참들이 그를 만류하기도 했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싫은 내색 없이 열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열심 때문에 새로 전입해 오는 신병들은 그에 비견되며 고참들의 갈굼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렇게 매사에 몸을 사리지 않는 성실함과 착함 심성을 가졌던 그는 차차 주위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대 내에서 공동 작업이 있었던 어느 날, 너무 무리한 탓인지 그만 그의 한쪽 어깨가 탈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내색 없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일을 멈추지 않았던 그...

 그는 결국 일병계급장을 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쯤, 습관성 탈골로 입원하게 되었고, 그제야 부대원들은 그가 얻은 병에 대해 알게 있었습니다. 그가 입원한 후에 부대원들은 그의 미련함을 탓하면서도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말 종교행사 때면 여전히 환한 그를 찾아가 위로와 기도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만 그는 모두의 바람에도 병세가 악화한 채,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을 가게 되었고, 끝내 의가사제대라는 불명예를 안고 군을 떠나가고 말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제대한 지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군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을 종종 되새겨볼 때면 소년처럼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모두를 감동하게 했던 그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 군 생활은 평생을 안고 갈 상처로 남아 있진 않을런지...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같던 재회  (0) 2020.02.11
짝사랑의 추억  (0) 2020.02.11
오토바이의 치명적인 매력  (0) 2013.02.10
코란도 지프  (2) 2012.01.21
아사꼬를 추억하다.  (0) 2007.04.13
6학년의 기억  (0) 2003.07.04
얼치기 강사  (0) 2003.07.04
다단계회사를 다니던 친구들  (0) 2003.07.04
비겁한 도피  (0) 2003.07.03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