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의 기억

추억 2003. 7. 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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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 집에서 조그만 슈퍼를 시작하게 되어 그동안 다니던 A 초등학교에서 Y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전학을 가게 된 학교는 시설이 잘 갖춰진, 소위 '특 A 학교'라고 불리던 곳이었는데 다니던 학교와 비교해볼 때 확실히 그런 평판을 들을 만 했습니다.

 요즘에는 일반화되어 전혀 신기할 것이 없지만, 스피커 방송이 대부분이던 그 시절. 그 학교는 벌써 TV 방송시스템을 갖추고 전 교실에 하나씩 설치된 TV를 통해 학생자치방송과 영어교육을 실시할 만큼 재정이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도심교차로와 지하철이 가까워 교통이 편리했고, 인근에는 엘리베이터 설비가 되어 있는 고층아파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집에 차 한 대 굴리기도 쉽지 않던 시절에 이미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어머님들까지 있었습니다.

 배정받은 학급에서 반 년간의 5학년 생활을 마치고 6학년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학기초에 반장, 부반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는데 그 학교는 6개월 임기의 학급임원제를 두었고 한 학기에 6명을 뽑았습니다.

 이전에 다니던 A 초등학교에선 성적이 그다지 나쁘지만 않다면 누구나 반장선거를 통해 리더쉽을 배울 기회가 주어졌었고 하는 일도 거의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었기에 선뜻 나서게 되었습니다. 임원선거 결과가 나오자 몇몇 친구가 저를 밀어준 덕분인지 무난히 6명의 학급임원 중에 제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담임은 당혹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담임은 애써 당혹감을 감추며, 전교회장선거에 출마할 사람이 없느냐고 당선된 임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아...간이 부었다고 해야할지...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사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저는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제 말에 학급 전체가 시끄러워졌고, 담임선생은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정말이냐? 네가 전교회장을 할거냐?" 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담임은 저를 복도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지현아. 잘 생각해봐라. 전교회장은 학급임원과는 다르다. 잘 생각해봐라."

 선생은 연거푸 설득 아닌 설득을 하였고, 어린 학생일 수밖에 없었던 저는 그만 담임의 뜻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학교는 어머님들의 치맛바람이 대단했었는데 학급 임원과 학생회 간부 자리, 기타 리더쉽을 발휘할 모든 기회는 학교에 재력을 행사하던 힘있는 집안의 자제들에게 우선으로 배정되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담임은 Y군을 학급임원이자 전교회장으로 밀어줄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듯했습니다. 그런데 Y군이 학급임원선거에서조차 떨어지고 전교회장에도 못 나가게 된 상황에 예상에도 없던 제가 돌출했으니 학부모와 이미 주거니 받거니 한 담임으로서는 참으로 난처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후에 담임은 재량권을 이용해 Y에게 체육부장 자리를 주었고 운동회 때면, 고싸움놀이의 장수역할을 주기도 하였으며 서예동아리의 수제자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제가 학급임원에 뽑힌 소식을 들으신 부모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도 걱정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학급임원의 어머니는 학부모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암암리에 갖가지 명목의 적지 않은 돈과 선물들을 뿌려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그만 슈퍼를 운영하던 집안 사정으로는 턱없는 일이었기에 어머님께서는 조그만 선물을 챙기시고는 담임을 찾아가셔서 당신이 파출부를 하시며 어렵게 산다는, 지어낸 이야기로 미리 선수를 치셔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6개월 임기의 학급임원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1년간 정말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의 동생이 학급임원선거에서 떨어졌던 동료 Y군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저는 Y군을 P군으로 착각한 동생의 이야기에 격분한 나머지 P군과 다툼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애매한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 빌미가 되어, 저를 벼르던 학급동료에게 이른바 '왕따'의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와 집안 형편과 생각이 비슷했던 K, B, J 등의 친구들이 함께 해주긴 했지만 그들의 집요한 폭력과 괴롭힘은 1년간이나 지속하였습니다. 한편으론 저를 그렇게 괴롭히던 그 친구들은 나이에 비해 참으로 영리하고, 대담하기도 했습니다.

 수업 중에 앞으로 어떤 여자와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에 P군은 대뜸 "돈 많고 오래 못사는 여자하고 결혼할 거예요."라고 대답하여 선생이 할 말을 잃게 하기도 하였고 K라는 친구는 자신과 학급의 일을 이용해 학부모와 결탁(?)한 담임의 비리를 수업 중에 제기해, 집단항명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쩔쩔매며 자신의 금 딱지 '갤럭시' 시계를 변명하던 비굴한 담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 관련 글 : 이 몸쓸 경험들은 나의 진취성을 거세해버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관련 글 : 학폭 가해자 중 한 명이 병장으로 있는 부대에 50살 신병으로 배치받은 악몽을 꾸다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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