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시대 대표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 씨의 보수 지향적, 반공 지향적 발언들에 떠들썩합니다. 그런 그의 변화가 굳이 나쁘다기보다는 그가 과거에 쌓아왔던 저항적 이미지, 대중이 그에게 바라던 기대치와 다른 돌발 행보를 보인다는 것에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 듯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변하기 마련입니다. 일본강점기 때, 반일에서 친일로 전향했던 수많은 문학가, 그리고 신념을 바꿔 보수당에 뛰어든 노동운동가들과 민주당 원로 정치인들의 예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변절이 되었건 전향이 되었건, 희생이 되었건, 아니면 퇴행이 되었건... 그들에겐 그것은 아마도 생존과 처세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위와 같은 정치적인 입장의 변화 말고도 우리가 평생을 통해 겪게 되는 생물학적인 변화 또한 대단히 극적입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을 한번 떠올려봅시다. 바짝 마르고 작은 키에 남루한 옷을 입고 새카맣게 그을리고 윤기 없이 주름진 얼굴에 흰머리가 가득한 파마머리의 할머니가 낡은 유모차에 폐지를 실은 채 손잡이를 두 손으로 매달리다시피 잡고는 힘겹게 밀고 갑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살이와 빈곤에 시달려 걸걸해진 목소리와 남자처럼 억세진 손과 심술궂고 사나운 성격을 가지게 된 할머니이지만 처음부터 그녀는 그런 모습의 할머니로 세상에 태어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할머니들도 과거 20대의 아가씨 시절엔 팽팽한 우유빛깔 피부와 가녀린 S자 몸매와 마치 악기 소리처럼 맑은 목소리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상냥하고 잘 웃고 수줍음이 많은, 매력적인 성격을 가졌을 것입니다. 어느 여자 연예인이 강심장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여자는 25살이 넘어가면 잘 팔리지 않는다고...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리고 세파에 시달리면서 상품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빛나던 육체는 점점 보기 흉해지고 성격은 지속적인 생채기와 굳은살이 더해지면서 향기롭던 매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노파의 모습을 향해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차차 사람과 세상에 대한, 솜사탕 같던 생각도 달라질 테고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자신이 폐지 줍는 할머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할머니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이 한결같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이 변질하여 갑니다. 육체와 생각과 성격과 감정은 차차 오래되어 쭈글거리는 사과처럼 사그라져갈 것입니다.
* 관련 기사 : 김지하 시인, 말년 행보 논란... 잘 늙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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