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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27 운명의 장난

운명의 장난

일상 2006. 4. 2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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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처럼 갸름하고 예쁘장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저의 군대 고참이었습니다. 믿고 있던 종교에 대한 꼬투리에서 시작된, 그의 집요하고도 치욕스런 학대 때문에 탈영과 살인의 문턱에서 몇 번을 망설였는지... 그 이름 석 자는 뜨거운 낙인 자국처럼 뇌리 속에 남아 저만의 인터넷 수배대상이 되어왔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게도, 오늘 그 사람을! 그렇게 찾던 그 사람을 집 앞 가게에서 만나고 말았습니다. 회사 야유회가 있는 날이어서 평소와 달리 조금 늦게 일어나 물품을 사고자 집 앞 가게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거짓말처럼 그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짜고짜 불렀습니다. "OOO 씨!!"

 새치 섞인 장발머리가 움찔하며 돌아보았습니다. 늙어 보이긴 했어도 틀림없는 그였습니다. 기억을 더듬는 눈빛의 그는 잠깐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OOO 씨 맞죠? 저 권지현입니다."

 "아... 권지현... 살이 쪄서 못 알아봤다. 니 옛날에는 빼짝 말랐더만... 지금은 많이 변했네. 우선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자."

 따라나간 가게 밖에는 우유가 실린 다마스 트럭이 보였고 그는 곁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서울이 집인 걸로 아는데..."

 "응... 여긴 잠깐 내려온 거야. 좀 있음 다시 서울로 올라갈거야... 근데 넌 여기사냐?"

 "네... 회사도 이 근처고..."
 
 "아... 그렇구나... 난 사업하다가 몽땅 날려 먹고 잠시 이거 하고 있다. 하하."

 갑자기 노숙자처럼 보이는 노인네가 다가오며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OO야..."

 "저리 가요 할아버지! 웬 미친 영감이..."

 "그건 그렇고 여기 우유들 중에 하나 골라라."

 "고맙습니다. 지금 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술 한잔하게 연락처 알려주십시오."

 "어? 그래..."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요."

 예상치 못했던 그와의 조우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병장일 것 같았던 그는 또 다른 이등병이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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